항공권ㆍ영화표 등 부담금 “징벌성 등 징수원칙 위배” 판정
‘부적절’ 25개 중 7개만 개선… 부처 이기주의가 구조조정 막아
부적절 판정 받고도 존치된 주요 부담금. 그래픽=신동준 기자

해외 여행객이 출국할 때 내는 항공료에는 1인당 1만원(선박은 1,000원)의 ‘출국납부금’이 포함돼 있다. 이는 정부가 “관광산업 발전에 쓰겠다”며 해외 출국자에게 ‘페널티’ 성격으로 강제 부과하는 부담금으로, 2017년엔 약 2,700억원이 걷혔다.

하지만 정부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부담금운용평가단’은 벌써 세 차례(2006, 2011, 2017년)에 걸쳐 “출국납부금이 부담금으로 적절치 않다”며 폐지 또는 일반 세금(개별소비세)으로의 전환을 요구해왔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해당 사업으로 직접 혜택을 보거나, 그 사업의 원인 제공자에게 물리는 게 원칙인데 출국납부금은 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출국자가 국내 관광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출국납부금으로 추진되는 사업들이 이들에게 직접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다. 출국납부금 등으로 조성한 관광진흥개발기금은 주로 호텔, 콘도 등 관광사업자에게 저리로 자금을 빌려준다. 게다가 출국납부금이 처음 도입된 1997년과 달리 지금은 출국자가 3,000만명에 육박해 벌칙적 성격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출국납부금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사실상의 ‘준(準)조세’로 여겨지는 각종 부담금의 규모가 올해 역대 최대인 2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미 퇴출 판정을 받은 부담금의 70%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부담금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GDP보다 빨리 느는 부담금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부담금 징수액은 21조993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담금 징수액은 지난 2004년 10조원을 돌파한 뒤, 2007~2012년 14조~15조원대를 기록하다 2017년 20조원을 돌파했다. 확정치가 나온 최근 5년간(2013~2017년) 부담금 징수액 증가율(22.8%)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21.0%)을 웃돌았다.

이는 경제규모 확대와 더불어, 기존 부담금에 대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003년 정부는 각 부담금의 △징수가 타당한지 △목적에 맞게 쓰이는지 등을 외부 전문가가 매년 평가하는 ‘부담금 운용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2003~2017년 사이 11차례의 부담금 운용평가 내역을 보면, ‘부과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은 25개 부담금 중 그간 폐지 또는 개선된 부담금은 7개(28%)에 불과했다. 70% 넘는 ‘부적절’ 부담금이 여전히 운영 중인 셈이다.

연간 부담금 징수액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단골 지적 받는 부담금들

이 중에는 여러 차례 부적절 의견을 받은 부담금도 많다. 1만원짜리 영화 표에 포함되는 약 300원의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담금(2017년 약 500억원 징수)’이 대표적이다. 영화산업 발전 재원을 조성하기 위해 2007년 도입된 이 부담금은 당초 2014년 폐지(일몰) 예정이었다. 평가단도 2011년과 2014년 “타당성이 낮다”며 “일몰에 맞춰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화업계 종사자가 아닌 관람객으로부터 돈을 걷어 영화산업에 투자하는 게 부담금 원칙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말 국회 논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부담금을 폐지하면 영화발전기금이 2019~2020년엔 고갈된다”는 논리로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담금은 결국 오는 2021년까지 연장됐다. 평가단은 2017년에도 “영화발전기금 여유자금(2016년 기준 2,327억원)이 과다해 부담금 부과율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역시 제도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경유차에 연간 10만~80만원을 물리는 ‘환경개선부담금’은 정부도 폐지에 공감하고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담금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경유차 운행거리에 비례해 부과해야 하지만 지금은 경유차를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담금을 낸다.

4,600억원(2017년)에 달하는 부담금은 ‘국가 전체 환경개선’ 사업에 쓰이는데, 이 부담을 경유차주에게만 물리는 것도 논란을 사고 있다. 평가단 역시 이런 이유로 2011년과 2017년 폐지 의견을 냈다. 폐지하는 대신 현재 경유 1ℓ당 375원인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일명 경유세)를 인상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유세 인상에 대한 조세 저항이 워낙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밖에 회원제 골프장 이용자들에게 1라운드마다 1,000~3,000원씩 내도록 하는 ‘회원제 골프장 입장료 부과금’은 이미 골프 소비에 대해 개별소비세가 부과되고 있어 ‘세금 따로, 부담금 따로’라는 이중과세 문제가 제기됐지만, 역시 존치되고 있다.

◇부담금 구조조정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불합리한 부담금을 재조정하기 어려운 건 부담금 자체가 ‘기득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연간 부담금 징수액 대부분은 지출용도가 정해진 기금이나 특별회계로 넘어간다. 기금ㆍ특별회계 사업을 관리하는 소관부처 입장에선 매년 안정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쌈짓돈’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부담금 폐지에 따른 ‘재원 공백’ 문제도 있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부담금을 줄이거나 폐지하면 그만큼 기존 세금을 높이거나 새 세금을 도입해야 하는데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과감한 부담금 구조조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 교수는 “최근 우리 세법 개정의 방향은 목적세(사용처가 정해진 세금)를 없애는 것”이라며 “부담금의 목적과 부담금 원인제공자가 합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담금은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행 부담금기본법을 개정해 △매년 부담금운용평가단이 개별 부담금에 대해 평가한 결과를 의무 반영하거나 △평가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부담금이 폐지되는 규정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